이민정 LEE Min Jung 의 작업을 처음 본 것은 2020 년 11 월, 영은미술창작스튜디오 오픈스튜디오 행사에서였다. 그 행사에 그를 만나러 갔던 것은 아니다. 도로시와 인연이 있는 몇몇 작가가, 그리고 지켜보고 있는 작가 몇몇이 입주하여 있었기에 그들의 작업을 보러 갔었다. 그러니까, 이민정 작가와의 만남은 참으로 우연한 일이었다. 그 많은 영은 입주 작가들 중에서 특별히 보려고 했던 작가는 아니었던 그를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취향과 작가 선택 방법을 잘 파악하고 있는 P 작가 덕분이었다. 이듬해 도로시 살롱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던 그는 자신의 작업을 열심히 보여준 후 옆방 작가의 작업이 재미있다며 나를 이민정의 작업실로 이끌었다.
P 작가의 생각은 옳았다. 무채색을 주조로 간간히 세련된 파스텔조의 따뜻한 색이 비치는 이민정의 추상(抽象)은, 첫눈에 꽤나 매력적이었다. 처음 작업을 대할 때 선입견 없이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늘 그랬듯 몇마디 묻지 않고 슬쩍 그의 작업을 훑어 보았고, 그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단편적인, 그러나 나로서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정보를 꼭꼭 입력하고 그 방을 나왔다. 물론, 다음 개인전은 언제로 계획되어 있냐는 질문도 잊지 않았다. 도로시에서 한 번 같이 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뒤로 하고.
그로부터 7-8 개월이 지난 작년 6 월, P 작가의 개인전을 보러 이민정이 도로시 살롱을 찾았다. 전시장에서 다시 만난 작가와 자연스럽게 그의 작업 근황과 전시 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매력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가 의외로 아직 개인전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20 년 12 월 영은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레지던시 보고전 이후, 새로 마련한 작업실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그는 조용히 홈페이지 주소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매력적인 그의 작업과 다시 만났고, 2 개월 후 그의 작업실을 정식으로 방문한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해 개인전 일정을 확정했다. 2020 년 11 월 첫 작업실 방문, 2021 년 6 월 작가의 갤러리 방문, 8 월 작업실 방문, 그리고 2022 년 5 월 개인전 개최. 생각해보니 이렇게 빠른 속도로 한 작가와 개인전을 진행하기로 확정한 것은 2018 년 여름에 만나 2019 년 10 월 전시 진행을 확정했던 윤정선 개인전 이후 처음이다. 대개는 여러 작가와 함께 하는 기획전(그룹전)으로 시작하여 작업과 일하는 방식을 살피고 서로 어느 정도 맞는다고 생각되었을 때 개인전을 함께 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었을 만큼, 이민정의 작업은 매력적이었고, 그의 진지한 태도는 믿음직스러웠다. 그의 이력을 살펴 볼 때 다시 개인전을 할 시점이 도로시에서 제안할 수 있는 일정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도 물론 한 몫 했다. 속된 말로, ‘아다리’가 잘 맞아떨어졌다.
이민정은 추상 abstract 작업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추상을 어려워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추상을 좋아한다. 추상화 전시를 준비할 때 마다, 조금은 걱정이 앞선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갸우뚱 거리며 전시장을 휙 돌고 당황하며 나가버리려나. 분석하고 비평하기 좋아하는 평론가와 기획자, 작가들은 얼마나 도끼 눈을 뜨고 작업을 날카롭게 바라 보려나. 그런데, 그 어렵다는 추상화로 개인전을 준비하며, 이민정은 < 눈과 마음 L’Œil et l’Esprit >이라는 시적이고 철학적인 제목을 제안했다. 이 제목은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의 책 제목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Maurice Merleau-Ponty (1908-1964)는 프랑스 유학시절보다 한국 와서 더 많이 이름을 들은 학자다. 고백컨데, 미술이론 – 미술사를 전공했지만 나는 메를로-퐁티의 저서를 아직 읽은 적이 없었다. 어윈 파놉스키 Erwin Panofsky 의 도상학이나, 하인리히 뵐플린 Heinrich Wölfflin 의 미술사 방법론, 프랜시스 해스켈 Francis Haskell 의 역사와 이미지,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의 아비투스 habitus 같은 것들에 대하여서는 열심히 공부했는데, 메를로-퐁티에 대하여서는 스치듯 지나간 기억이 전부다. 아마도 현대미술이론과 미술사의 접근 방법과 연구 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려니. 그래서 이번 기회에 메를로퐁티를 한 번 읽어보았다. 어려운 책 일수록 번역서보다는 원서가 명료함을 알기에 원서를 구해 읽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번역서를 읽었다. 그리고, 역시나, 좌절했다. 회화를 논하는 이 철학서는 정말, 쉽지 않았다.
이민정 개인전< 눈과 마음 L’Œil et l’Esprit >을 보며 지적 호기심에 메를로-퐁티의 < 눈과 마음 >에 도전하실 분들께 미리 안심시켜드린다. 남부럽지 않게오랜 시간 한국과 프랑스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 책, 녹녹치 않았다. 어쩌면 눈과 마음, L’Œil et l’Esprit, l’œil et l’esprit, 그리고프랑스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한 탓에 더욱 그랬을런지도 모르겠다. œil 를 눈이라고 글자 그대로 번역한 것은 이해가 갔는데,esprit 는 왜 마음으로 번역했는지, 책을 읽는 내내 이 단어의 합당성을 납득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L’Œil et l’Esprit 는 이해가쉬었는데, 눈과 마음으로 대입하면 무엇인가 석연치 않았다. 프랑스어로 esprit 는 영어와 같은 단어이다. 보통 우리가 esprit 라고 하면 마음보다는정신이나 영혼을 더 많이 이야기 하지 않던가. 역자가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인데, 이를 마음으로 번역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리라. 아시겠지만,대문자로 쓰는 눈 L’Œil 과 마음 l’Esprit 는 소문자의 눈 l’œil 과 마음 l’esprit 과 뉘앙스가 다르다. 정관사가 있고 없고도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역자 또한 역주로 깨알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 수록, < 눈과 마음 >보다는 < 눈과 정신 >이 더 원 제목의 의미와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커졌다. 내게 ‘마음’이라는 단어는, 어떤 정신(인식과 사유)적인 것 보다는, 심적인 것, 감정적인 것에 더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마음’의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마음 [명사] 1.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2.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작용이나 태도. 3.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아, 그랬었다. ‘마음’은 이렇게 많은 뜻을 지니는 단어였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메를로-퐁티가 이야기 하고 싶은 l’Esprit 는 정신이나 영혼보다는, 마음에 더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 말의 단어를, 나도 모르게 축약하고 한정해서 쓰고 이해하고 있었구나 깨닫게 되는순간이었다. 어쩌면 그림을 볼 때, 회화를 대할 때, 미술 작품을 대할 때 우리가 범할 수 있는 작은 실수 또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내가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안에서만 보려고 애쓰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안에 대입하려고 애쓰는 그런 태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추상화를 보면서 내가 아는 것안에서 이해하려고 하니 ‘닮은 것’, ‘닮은 느낌’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고, 그러니 당연히 추상화는 어려울 수 밖에 없고 이해가 안 갈 수 밖에 없다. 추상화는‘사실적 재현에서 벗어나, 순수한 점, 선, 면과 색채의 표현을 목표로’ 하는 그림인데 말이다.
< 눈과 마음 L’Œil et l’Esprit >을 읽는 과정은 내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지만, 책의 내용 자체는, 작가의 사유 자체는 잘 납득이 안되고 동의할 수 없는부분들이 많았다. 책을 빌려준 이민정 작가는 수많은 밑줄을 그어가며 이 책을 읽었던데, 미술사 전공자로서, 현대미술전시 기획자로서, 그리고현대미술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스트로서, 1964 년에 쓰여지고 출판된, 60 여년 전 20 세기 전반을 살다 간 철학자의 예술에 대한 철학서는 그다지 와 닿지않는 내용들이 많았다. 회화는 이래야 한다, 예술가는, 화가는 이래야 한다는 식의 단정들은 21 세기를 1/5 이나 넘기고 있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그닥 와 닿지 않는 내용들이더라(물론, 내가 불완전하게 읽고 이해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한가지, 보는 것에 대한 사유, 눈과 몸에 대한 사유, 인간이눈으로 보지만 결국 나 자신을 보려면 거울을 통하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본다’는 행위의 불완전성, 가능하지만 불가능하고,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인시지각, 시각적 인식에 대한 사유는 명료하지는 않아도 얼핏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 것 듯 했다. 알 것 같기도 하고 또 모를 것 같기도 한, 정확하게이해되지는 않지만 어떤 이야기인지는 대략 알 것 같은 그런 이야기. 그리고 이 경험은 우리가 추상화를 볼 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 그런 인지, 그런인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불완전 한 것 같지만 또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공감이 갈 것 같기도 한, 정확하게무엇일 이유는 없지만 또 정확하게 어떤 무엇일 수도 있는, 모호하면서 명료할 수 있는 추상화. 눈으로 지각하지만 마음(정신)으로 인식해야하는 시지각,시각적 인식은 곧 추상화를 그리는 행위와 감상하는 행위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전시를 준비하며 읽었던 이민정의 초기작업노트 구절이 떠올랐다.
한 시인의 정수(精髓)가 시작(詩作) 그 자체보다 부지불식간에 축적해 온 시심(詩心)이라고 한다면,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실 작업에 임하게 하는 일정 강도의 그림 그리고 싶은 ‘마음’ 이 존재 할 것이다.그런 마음은 외부 환경이나 사물에 감흥 함으로써 형체를 나타내기도 하고 또는 빈 화면을 대했을 때 즉흥적으로 일어나는점, 선과 같은 그림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에 대한 흥미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나의 경우는 후자라고 볼 수 있는데 빈종이나 하얀 캔버스 화면을 대했을 때나의 감수성이 제약 없이 방출되는 순간들을 즐기는 것이다.무계획적인 방식으로 그려진 이런저런 형상에 어떤 의미가 오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심지어 아무 의미도 없을 수도 있으며 그림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
내가 대결하고 싶은 세상을 캔버스 화면으로 축소하고 나의 마음이 아는 형태들과나의 마음이 아직 알지 못하는 형태들이 등장하고 지워지는 과정 속에서 생긴 필연적인 형상을 찾으려고 한다.다르게 말하면 어떤 제약을 두지 않고 그린다고 스스로에게 가정하고그리는 형상들과 또 그림이 그림을 그리는 그림의 준 자율성적인 상태가 만들어내는 형상들이 섞여 있다고 볼 수 있겠다.
2007. 12. 개인전 < 아름다운 분기점 beautiful junction > 작업 노트 중에서
그로부터 15 년이 지난 오늘, 그의 작업 노트는 조금씩의 변화가 있기는 했었지만, 여전히 그 결을 이어가고 있다.
(…)
식빵에 잼을 바르는 기분으로 그리기.
(…)
가벼워지고 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이것이 나에게 1 순위의 어떤 것이라는 생각으로 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캔버스의 크기는작아졌고 그림의 단계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과정이 드러나는 그림이 되었다. 색깔을 추구하면 형태가 약해지고 형태를 추구하다보면색깔이 단조로와진다.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처럼 고정된 것과 변하는 것이 다 드러났으면.
2022. 4. 작업 노트 중에서.
빈 캔버스 앞에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인지한 것을 다시 몸으로 그려내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 화가. 그리고 사실적 재현에서 벗어나순수하게 점, 선, 면의 색채 표현에 열중하는 그림, 추상화. 프랑스가 낳은 세기의 지식인, 대철학자 메를로-퐁티의< 눈과 마음 L’Œil et l’Esprit >이 잘이해가 안될지라도, 우리는 이민정이 그의 그림을 선보이며 왜 < 눈과 마음 >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었는지 이제 십분 이해되기 시작한다. 눈으로 본 것을마음으로 담아 기억하고 이를 다시 마음에서 꺼내어 눈으로 보며 손으로 그리는 그림. 이민정에게 눈과 마음은 < 보다 >와 < 생각하다 >이고, 그 안에는 우연과필연, 무의식과 의식, 의미와 무의미가 공존하고, 부정형과 정형, 완전과 불완전, 정적인것과 동적인 것들이 공존한다. 그림을 잘 그려 미대에 들어갔지만,‘닮게 그리는 것’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이민정은 그렇게 보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보면서 그의 몸으로 – 손으로, 그리고 눈으로 그의 기억 속의심상을 더듬어 점과 선, 그리고 면이 만드는 색채와 형태로 표현해낸다. 그 안에 그가 담은 의미는, 무의미는 때로는 의식적이고 또 때로는 무의식적이다.그렇게 작가가 눈과 마음으로 만들어낸 그림 안에서 각자가 느끼고 또 찾아내는 의미와 무의미, 형태와 색채는 세련되고 감각적이어서 매력적이다. 그렇게우리의 눈과 마음이 그의 그림을 통해, 이민정 LEE Min Jung 의 < 눈과 마음 L’Œil et l’Esprit >을 통해 다채롭고 풍요로와진다. 메를로-퐁티가 회화를논하며 이야기 하고 싶었던 < 눈과 마음 L’Œil et l’Esprit >은 이런 것이었을까.
■ 임은신